선진국 뒤쫓던 시대 끝났다…차기 대통령 '독자 국가모델' 내놔야 [백우열의 융복합정치]

입력 2022-01-04 17:12   수정 2022-01-05 00:12

한국은 어디까지 왔는가? 중견 선진국으로 더는 따라 할 국가 모델이 안 보인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한국이 스스로 실현하며 제시하는 2030 표준국가 프로토타입이 필요하다. ‘혁신과학기술’ ‘데이터중심 가치판단’ ‘디지털 자유민주주의’ ‘끼인국가 전략’ ‘글로벌 전략’ ‘숲의 나라’ ‘대중문화’의 7대 영역이다. 차기 대통령 리더십의 사명은 이 프로토타입들을 구축하고, 이의 상승 선순환 알고리즘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감생심 성인군자들의 명언에 나오는 지도자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향후 10년, 20년 한국 생존·번영·주도의 도구상자(survival toolkit)를 만드는 시간을 단축해줄 대통령을 바랄 뿐이다.

한국은 어디까지 왔는가?
2022년 한국이라는 국가는 어디까지 왔는가? 한 국가의 역량은 절대적인 기준과 더불어 상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한다. 글로벌 수준에서 경제 10위, 군사력 6위, 정치력 11위, 과학기술 7위, 문화력 12위 등으로 계산해 보면 통합 국가 역량은 얼추 10위 정도다. 그러면 현재 한국과 비슷한 국가 역량을 지닌 국가들은? 프랑스, 영국, 독일, 호주, 그리고 일본 등이다. 이미 서구 선진 주요국은 한국을 자신의 그룹 일원으로 인정한다. 낯간지럽지만 이미 중견급의 선진국이다.

한국이 이 정도로 큰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지난 70여 년간 대다수 시민이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일하면서 거의 ‘자기착취’를 통해 창출한 경제적 부가가치와 민주주의 공고화 덕분이다. 여기에 존폐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시장 주도력을 확보한 최상급의 기업, 최고급 인력들로 구성된 관료 조직, 그리고 이들을 제도적으로 지원, 감시, 바로잡는 국가 체계가 인프라로 기능했다. 물론 국제 정치적, 세계 경제적 구조와 환경도 한국의 가치 상승·유지에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단 한 명도 평안한 퇴임을 맞지 못했지만, 어찌 됐든 여기까지 한국을 이끌어 온 지난 11명의 대통령과 그 집권세력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거칠게 요약하면 각기 처한 환경에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정치, 경제, 사회, 과학기술, 문화 모델을 선별·수용해 따라잡는 것이었다. 정치체제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경제 산업은 일본의 국가 주도 발전과 서구 시장경제 체제, 사회는 다원적 시민사회, 과학기술은 복제·국산화·혁신주도화, 문화는 서구 일본 대중문화 등이 그 모델이었고 프로토타입(prototype)이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이런 프로토타입들의 한국적 최적화를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젠 따라잡았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러면 한국은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은가? 내년 3월 선출되는 다음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더 이상 따라 할 모델이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혼란스러운 선거 정치 공방의 먼지가 가라앉고 청와대에 자리잡고 한숨 돌리게 되면, 역대 대통령들이 이끌어 온 이 국가의 현재를 인식하면 바로 이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즉, 다음 대통령은 가보지 않은 길, 한국의 향후 10년, 20년의 목표, 즉 글로벌 표준국가의 신(新)프로토타입을 제시할 수 있다. 만약 2022년 현재의 한국에 만족한다면 현상 유지도 좋겠다. 하긴 어떤 이들은 한국이 이미 ‘정점(피크)’에 이르렀고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도 한다. 유지하는 것만도 대단하다.

그러나 국가는 모멘텀을 잃으면 급속도로 쇠퇴한다. 지구에서 국가 역량은 치열한 경쟁의 대상으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돌릴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게다가 다음 대통령이 직면한 문제들은 현상 유지가 허용되지 않는 인류 문명 패러다임과 글로벌 환경의 역대급 변화다. 멀티버스를 논하는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과학기술과 전 지구에서 긴급하게 타전되는 기후변화,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블록화. 매일매일 지겹게 들어서 ‘한국은 위기다’에 짜증을 내는 우리에게조차도 충격적인 문제들이다.
스스로 실현하며 제시하는 표준국가 프로토타입 필요
한국은 글로벌 제국인 미국도 중국도 될 수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영역에서 한국의 프로토타입 역할을 했던 일본 모델도 더는 유효하지 않다. 한때 유행한 소위 북유럽 모델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중견 선진국 그룹에서 이미 자신만의 프로토타입 구축을 시도하는 대통령과 총리도 있다.

21세기 들어 가장 ‘완성형’ 국가지도자로 평가받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리더십은 ‘유럽의 병자’ 독일의 부활, 더 나아가 유럽연합을 넘어 글로벌 균형·공존외교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리더십은 젊고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소형 서구 중견 선진국의 국민통합과 헤징외교 프로토타입을 새롭게 실현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의 리더십은 경제 저성장, 포퓰리즘, 코로나의 늪을 탈출할 균형 있고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의 재건 프로토타입을 제시한다. 그리고 20세기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냉혹한 국제 정치에서 생존·번영·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국가의 프로토타입을 현실화했다. 아마 이들이 모이면 소위 ‘현자 집단’이 될 것이고 이들의 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을 통해 ‘국가지도자’ 알고리즘을 만들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상상 속이다.

이러한 프로토타입조차도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향후 10년, 20년 한국 각 영역의 선순환 알고리즘으로 기능하기는 어렵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따라 할 국가 모델이 없다. 한국이 스스로 실현하며 제시하는 표준국가의 프로토타입이 필요하다. 우리와 비슷한 고민에 빠진 그리고 우리를 따라잡으려는 여러 국가가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 프로토타입의 핵심 알고리즘 영역은 무엇인가?
이 짧은 지면에서 이리도 거창한 차기 대통령의 과제(중견 선진국 한국의 신표준국가 프로토타입)를 나열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프로토타입의 핵심 알고리즘 대상 키워드는 7개 정도 제시할 수 있겠다. 다행히도 현재까지 한국이 잘하지만 ‘다음’이 필요한 것들이고 우연히도 향후 20년 79억 인구의 세계와 5178만 시민의 한국을 좌우할, 상징할 것들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영역들의 기반이 된다.

Technology Korea. 향후 한국을 상징할 1순위다. 한국은 과학기술 기반 제조산업 국가다. 경제의 주요 부가가치는 여기서 나온다. 세계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기도 하다. 초격차 반도체 제조 기반 인공지능-빅데이터-알고리즘의 삼각 테크놀로지 구조는 인간 대체효과, 플랫폼 경제 확장, 더 나아가 경제산업 구조를 다른 차원으로 혁신하는 ‘치트키’다. 기존 제조산업인 화학, 자동차, 조선, 철강, 바이오헬스, 그리고 농림수산광업에도 단 하나의 예외가 없다.

Data Korea. 혁신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한국의 모든 국정운영(statecraft) 기반이 데이터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게끔 한다. 물론 호소력 짙지만 모호한 가치 중심의 캐치프레이즈도 필요하다. 현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많은 한국인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고 그 중요한 이유는 너무도 풍부한 한국의 모든 구성요소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과학적 가치판단과 정책 수립·집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Democratic Korea.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뤘다. 이는 한국의 유일한 정치체제이며 규칙이다. 현재 양극화 위기를 말하지만 양대 대선 후보들은 모두 ‘중도 표심 공략’을 행하고 있다. 현기증 나는 미국의 양극화를 보면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 환경의 초연결사회는 가짜뉴스, 포퓰리즘, 민주주의의 퇴보(democratic backsliding)를 초래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에 노출돼 있다. 한국과 전 세계 선거들에서 그리고 하루하루의 정치 갈등 상황에서 드러나듯이 디지털 온라인화는 자유민주주의의 심화도 파멸도 가능케 하는 양면적인 수단이다.

In-Between Korea.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사이에 끼인, 그 최전선에 있는 국가다. 다수 국가들, 선진 주요국도 유사한 상황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며 서구 선진국 그룹에 속해 있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다원주의 사회를 그들과 공유한다. 중국과는 다르다. 그러나 중국과 산업가치사슬로 촘촘히 엮여 있고 공급망의 상호의존도는 ‘과도’할 정도로 높다. 산업 원자재도 위태하다. 이것은 미국과 소위 ‘반중연대’ 블록을 형성하는 일본, 대만, 호주, 영국, 프랑스,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한배에 타고 있는 셈이다. 이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생존할 매뉴얼이 필요하다.

Global Strategy Korea. 한국은 더는 동북아시아에 묶여 있어도, 있을 수도 없다. 서·북유럽 정책결정자들이 서울로 몰려오고 있다. 이유는 일본의 보완재이자 대체재인 한국과 연계·연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현 정부의 최대 외교업적인 ‘신남방정책’에 주목하며 한국의 글로벌 전략이 무엇인지 묻는다. 북한·북핵에 매몰된 한국 외교전략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국가 역량상 국제 환경상 동북아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러시아, 중동, 동·서·남·북유럽으로 전략 범위를 확대하면 한반도로의 부메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끼인 국가로서 한배에 탄 국가들과 함께 미·중 경쟁에 휘둘리지 않을 글로벌 구조 변화도 도모한다.

Forest Korea. 한국은 숲·산림 영역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 왔다. 육지와 바다의 숲은 전 인류 생존·번영의 희망이자 보편적 가치이며 이젠 천문학적 부가가치를 지니게 됐다. 탄소중립이 절실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이에 숲이 정치화, 안보화되고 있다. 숲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생존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상징할 수 있다. 막연한 인류 이상향만이 아니다. 이제 숲 없이는 무역도 어렵다. 무엇보다 동북아를 넘어서기 위해 중요한 핵심 국가 역량 영역인 소프트파워 증진의 핵심 사물(thing)은 숲이다. ‘숲’ 하면 한국을 떠올린다면 한국은 어떤 국가 위상을 갖게 될지 상상할 수 있다.

Pop Culture Korea.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가 한국에 관심을 존중을 보내는 이유 중 하나로서 이제 ‘보편성’의 수준까지 다다랐다. 한국과 외교적으로 갈등하는 일본, 중국, 그리고 북한 시민들도 이를 즐기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현실과 수준과 개방성을 실감한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영역의 복합적 다원적 사회·산업의 산물이 바로 한국의 팝, 드라마, 영화, 게임엔터테인먼트다. 하던 대로 하면 돼 보이는 이 소프트파워 영역은 어쩌면 차기 대통령이 프로토타입을 만들 필요가 없겠다. 때로는 정부가 프로토타입을 만들려고도 하지 말아야 할 영역이 많다는 ‘낄낄빠빠’의 또렷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2022년부터 5년 동안 이런 프로토타입을 구축할 수 있다면 차기 한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그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성인군자들의 명언에 나오는 지도자를 바라겠는가?
“또 한 번의 임기를!”을 외치는 보수·중도·진보 다수 시민의 바람이 투영되는 그런 대통령이 나와주면 좋겠다. 메르켈 같은 지도자는 언감생심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차선도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다수다. 그럼에도 향후 5년 안에 이 7대 프로토타입 구축에 희망을 품는 이유가 있다. 어떤 대통령이든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그 뒤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대통령이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면 한국의 다양한 공동체들이 버텨내고 방향을 수정토록 하면 된다. 결국, 한국이라는 신표준국가 프로토타입 구축은 시간문제다. 우리가 성인군자들의 명언에 나오는 지도자를 바라겠는가? 다만 그 시간을 단축해줄, 그 자기착취를 덜어줄 대통령의 리더십을 바라는 것이다.

■ 백우열은

혁신 과학 시대의 정치적 신구 난제에 천착하는 융복합정치학자다. 연세대, 홍콩시립대, 미국 UCLA에서 비교정치, 국제정치, 정치사상을 공부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세대 통일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외교부, 신남방위원회, 국회 등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아시아와 세계의 민주주의·독재 정치체제, 정치안보와 경제안보, 그리고 하드·소프트·스마트 파워와 공공외교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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